제목: 토리노의 말 - 말라 비틀어진 척박함
이름: * http://www.metalman.co.kr


등록일: 2013-01-18 03:20
조회수: 2850 / 추천수: 442


1.jpg (167.2 KB)

폭풍 속에 멈추어진 마부와 딸, 그리고 말.
흑백영상에 가득 담겨지는 폭풍 속에서
그들의 무겁기만 한 걸음을 따라 걸으며,
거센 폭풍 속 흙먼지가 살갗에 부딪히는 통증을 체감하게 된다.

영상 속에 가득 채워진 말라 비틀어진 것들.
흙먼지의 폭풍,  척박한 대지, 바람에 쏟아져 날리는 낙엽 부스러기들,
마부와 딸의 푸석푸석하게 말라비틀어진 살갗,
듬성듬성 부서내린 흙돌벽,
삶은 감자가 올려지는 목기.
마른 기침.
이 모든 것들이 흑백영상 속에 말라 비틀어진 질감으로 고스란히 묘사된다.

지쳐있고 말라 비틀어진 척박한 삶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충분히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긴 화면의 시간을 통해
그들의 말라 비틀어진 척박한 일과 속에서의 그들에게서
감정없음을 발견하기 보다는, 어떠한 감정의 묘사도 발견하지 못한다.
감정을 상실한, 언어상실은 당연한 증상으로 보인다.

정지된 실내에서 마부와 딸의 간격에 가득 채워지는 바람소리는
터질듯한 긴장이었다.

마부는 삶아진 감자 한 덩이를 먹어내지 못하고
창가에 다가앉아 창 밖을 응시해야만 한다.
마부가 그랬고, 이후 그 딸이 창가에 다가앉아 창 밖을 주시한다.
그것은 기다림이나 그리움의 흔적없이,
그냥 운명적으로 창밖을 주시해야만 하는,  
채워진 시간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또한 늙고 병든 말은
그 아침마다 이들과 같은 모양새로 마굿간에서 발견되어진다.

방문자 니체는
충분히 마부의 삶을 공감하고 대변하는듯,
운명적 자포자기에서 오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 절망감의 철학적 강변한다.
시대를 바꾼 그의 철학논조들이 뱉어낸다.  
이미 보여진 마부의 일상에 닿기 힘든 것이리라... 추측하던 순간.
마부는 헛소리라고 단정 지어준다.
나는 세상의 인식을 바꾼 니체의 철학보다.
마부의 그 한마디에 절대적으로 동조자가 되어 버린다.

삶에 대하여
되지도 않는 머리통을 들이밀어 이해하려 말라.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머리통을 들이밀지 말라.
예술영화라서 어렵다 난해하다...라고 지껄이지 말라.
그런 시도자체만으로 네 머리통의 한계는 충분히 증명된다.
체감하고 발견함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마부와 딸의 일상.
옷을 벗기고, 갈아 입히고,
물을 길어오고,
삶은 감자를 입 속에 주어넣고,
이들에게 수없이 반복되었을 일상의 형상은 반응일뿐.
언어의 대화가 소용없는,
언어를 잃어버린지 오래되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어떠한 고통의 신음도 없다.
오로지 반응할뿐.... 많은 삶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리라.


딸이 손가락 끝으로 성경 한페이지를 더듬는다.
성소는 오로지 주님을 성심으로 섬기는 실천만을 허용하는도다.....
이들에게 성소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에게 성스러울 수 있을까?
세상의 절대진리였던 성경구절조차도
딸에겐 어떠한 내용도 의미없이 손끝으로 더듬어 질 뿐이었다.
너무도 하찮아지고, 가당찮아진다.
이 삶에서 무엇을 참회할 것인가.

롱 테이크의 샷은
오두막, 마굿간, 허물어져 가는 벽. 나무판자들의 틈새.
남루하고 간결한 집기들을 관찰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준다.

작은 손수레에 실려진 짐들이 하나하나 내려져 오두막에 옮겨지는
지루하게 관찰 끝에 허탈한 웃음을 털어내게 된다.
그들의 내용없는 창 밖의 주시처럼
무의미한 주시의 행위에 놓여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긴 영상의 늘어짐은
손수레 하나에 실려진 그들 삶의 부피를 헤아리는 시간임을 발견하게 된다.

마부는 오른팔은 사용하지 못한다 - 개인의 한계
늙고 병든 말 - 의지대로 되지 않는 현실
폭풍 - 한계, 부자유, 위기
말라버린 우물 - 미지로부터의 불행한 현실의 엄습
램프의 고장 - 죄어오는 불행의 현실, 당연한 것의 상실.

이 영화에서
마부와 딸, 그리고 늙고 병든 말은
영화 속 말라 비틀어진 척박한 여섯날의
어느 한 순간에도
이들의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그들의 오두막에 의탁한 여행자로서
폭풍 속에서 우물까지의 왕복을 동행하였다.
함께 마굿간을 드나들었고,
오두막 한켠에 웅크리고 그들의 일상을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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