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퍼온 글)) 현악기 명기와 연주자들
이름: * http://www.metalman.co.kr


등록일: 2009-05-22 08:51
조회수: 7614 / 추천수: 1428




“어떤 멋있는 악기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그것은 깔끔하고 능숙한 솜씨로 슬픔과 위대함을 읊어주며 숭고한 노래를 들려주는 스트라디바리였다”
                                              -조르쥬 상드의 <콘수엘로>제 1권 중-
-------------------------------

황홀한 그 순간들

(1) 명기와 함께 한 순간들
시인 하이네는 “바이올린만이 사람의 섬세한 마음까지 낱낱이 전해줄 수 있는 악기이다”라고 말했다. 호프만의 단편 <크레모나의 바이올린>에는 바이올린을 ‘에너지, 힘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서로 싸우는 소리’라고 묘사해놓은 대목이 있다.

쇼팽의 연인으로 작가이기도 했던 조르쥬 상드의 <콘수엘로> 제1권에는 “어떤 멋있는 악기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그것은 깔끔하고 능숙한 솜씨로 슬픔과 위대함을 읊어주며 숭고한 노래를 들려주는 스트라디바리였다”라는 구절을 써놓았다. 그래서인지 바이올린 연주자에게는 유독 그가 연주하는 악기가 그의 개성을 상징하고, 곧 대명사처럼 덧붙여지기도 한다.



명기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 몇 가지

벨기에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를 말할 때, 그뤼미오의 스트라디바리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곡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현악기라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보기이다. 프랑스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가 세 번째 일본 연주 여행을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1953년 9월 1일 프랑스의 알프스 산중 몽상에서 타계한 소식을 알리면서 ‘티보가 사랑했던 악기 스트라디바리와 함께’라는 토를 달았던 것도 한 가지 예이다.

역시 프랑스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여류 지네트 느뵈가 미국 연주 여행도중 1949년 10월 28일 아조레스 제도의 생미겔에서 비행기 사고로 피아노 반주자로 그녀와 동승했던 오빠와 함께 타계했던 소식란에도 ‘그의 애기 스트라디바리와 더불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느뵈와 연관시켜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한 사람의 애기를 말해보면 헝가리 태생의 요한나 마르치(1924-1979)는 스승 플레쉬가 쓰던 과르네리를 물려받았다 한다.

안익태 선생이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안드레아 아마티 1573년 제작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익태는 그 바이올린을 팔아서라도 지휘 활동비용을 충당하려 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감추고 있었다. 대략 6억 이상을 부를 수 있는 바이올린은 끝내 처분을 못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가지고 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렐리는 아마티 쪽을 선호함

‘바이올린 명인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코렐리(1653-1713)를 돌이킬 때, 코렐리가 사용했던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안드레아 아마티, 또 티롤지방의 바이올린 제작의 거장 마티아스 알바니의 바이올린도 즐겨 연주했다고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코렐리는 아마티 쪽을 좋아했다고 전해짐).

‘근대 바이올린 음악의 아버지’라고 칭하기도 하는 비오티(1755-1824)가 1782년 봄 파리에서 데뷔 연주를 했을 때, 비오티가 연주했던 스트라디바리의 ‘강하고 화사한 음의 풍요로움에 모든 파리 사람들이 넋을 잃은 듯했다’고 하는 미사여구도 있다(비오티가 등단하기 이전의 파리 사람들은 아마티·야콥 슈타이너 제품 바이올린의 달콤하며 조금은 코먹은 듯한 음색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알려짐).

아마티가의 명성이 높았던 시절 이탈리아 이외의 장소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이올린 제작자는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슈타이너는 아마티가의 손자 니콜로 아마티의 명성에 필적했다고 한다. 그것은 당대의 바이올린의 대가였던 H.비버·발터·베라치니·로카텔리·레오폴트 모차르트·요한 세바스찬 바흐 등이 슈타이너가 제작한 바이올린을 사용했던 것으로 설명된다.



스트라디와 과르네리 둘 다 소유했던 파가니니

파가니니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델 제수 두 가지를, 그때그때 연주회의 분위기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선택했다 하는데, 과르네리 쪽을 애용했던 것으로 전한다. 크라이슬러는 과르네리 델 제수의 섬세한 울림을 중요시했다고도 한다.

20세기의 명연주자들 가운데서는 오이스트라흐는 1716년제 스트라디바리를, 펄만도 스트라디바리 ‘Ex-Spanish’1722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음질의 전형적인 스트라디바리의 소리를 선호했고, 하이페츠의 제자 에릭 프리드만은 자신의 스트라디바리가 스승 하이페츠의 과르네리보다 소리가 잘 들린다고 비교해 보이기도 했다. 기돈 크레머는 스트라디바리 1732를 연주하는데 부드러운 소리이지만 G선의 울림이 약한 편이라는 지적도 있고, 크레머는 한 때 ‘JB Gadanini’로 연주 했었다.

과르네리의 대표적 연주자 하이페츠·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스턴·셰링·아카르도·핀커스 주커만·마이클 래빈·초량린·정경화·리치는 과르네리 델 제수의 또 다른 특징을 택했다. 레오니드 코간은 차가운 지성미의 섬세함을 지녔는데 그의 과르네리 1737년제는 특히 G선의 소리가 도드라지며 오케스트라에도 휩쓸리지 않는 음량을 지니고 있다. 메뉴힌은 9살 때 유태인 악기상 에릭 하만으로부터 과르네리를 기증받았다. 미도리도 13살 때 일본의 한 애호가로부터 시가 21억 이상의 과르네리를 선물받았다 한다.



후베르만이 썼던 과르네리를 사용한 루지에로 리치

이들 가운데, ‘현대의 파가니니’라는 명성을 얻은 리치(Ricci, Ruggiero)는 후베르만이 썼던 과르네리 Ex-Gibson1734를 사용하며 이른바 바이올린의 명기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연주회 및 레코드 녹음도 남겼다. 데카 레코드의 ‘크레모나의 영광’(The glory of cremona)에서는 바이올린 명기의 다채로운 소리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바로크 시대에서부터 근대 바이올린 곡의 소품 및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주제를 연주해주는 바이올린 명기의 15종은 다음과 같다. 안드레아 아마티 1560-70년경 제작, 니콜로 아마티 1656,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Spanish 1677, 스트라디바리 Ernst 1709, 스트라디바리 Joachim 1714, 스트라디바리 Monasterio 1719, 스트라디바리  Madrileno 1720, 스트라디바리 Rode 1733, 가스파로 다 살로 1570-80년경 제작, 카를로 베르곤지 Constable 1731, 과르네리 델 제수 Gibson 1734, 과르네리 델 제수 Lafont 1735, 과르네리 델 제수 Plowden 1735, 과르네리 델 제수 Ex-Vieuxtemps 1739, 과르네리 델 제수 De Beriot 1744년 제작. 리치에 대한 여담으로 그는 키가 150 cm대의 작은 키여서 손가락도 보통 사람보다 짧은 편이기에 리치만의 특수한 운지법을 개발하여 연주하였다.

바이올린 명기를 안내하는 음반으로는 ‘과르네리의 영광’ ‘스트라디바리우스 갈라 콘서트’ ‘스트라디바디 오케스트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 비교감상음반 등이 돋보인다.

이밖에 부기하자면 스트라디바리 첼로는 전 세계에 12대 있을 뿐이어서 희소성이 극히 높은데 로스트로포비치는 스트라디바리 Ex-Duport 1711을 사용하는데,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첼로는 음질과 울림은 최고이지만 힘이 부족하다고 했다.

장한나가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쿨에서 우승하고서 악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있었던 지난 1995년 4월경에는 장한나 후원회에서 당시 7억원 가량의 후원금을 모아 악기구입을 해주기로 했었는데, 장한나에게는 그때 4대의 첼로로서 과르네리·로제리·2대의 과다니니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몬타나냐제의 첼로로 25억 이상을 호가한단다. 과르네리 가문의 원조 안드레아 과르네리는 비올라 제작에서도 명성 높은데 비올라의 명연주자 프림 로스(Prim Rose)는 과르네리의 비올라 1676년으로 길이 413cm인 이 비올라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제품이다.



파가니니와 크라이슬러의 명기

바이올린 대명사가 되어버린 크레모나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이다. 참고 하자면 크레모나 이래로, 1795년에 파리 음악원 콩세르바트와르 설립 이후 바이올린 수요가 급증하면서부터 프랑스의 미르쿠르(Mirecourt), 독일의 미텐발트(Mittenwald)의 바이올린 제작학교 가이겐바우슐레(Geigenbauschule), 마르크노이키르헨(Markneukirchen)도 바이올린의 세계적 명산지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시카고의 케네스 워렌 악기 제작학교 설립.

이곳 크레모나에서 원조를 이룬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1505-1575년 경)는 자신의 아들들은 물론, 저 유명한 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를 키워냈다. 이들이 활동했던 1650년~1750년대야 말로 ‘크레모나의 황금시대’이고, 스트라디바리의 제품 중에서도 특히 1700년~172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최상으로 치는데 스트라디바리는 평생 1천2백 개 정도의 바이올린을 제작하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그중 약 6백50여개가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바 이다.

스트라디바리 악기의 제작시기는 스트라디바리가 초기 아마티시대, 롱 패턴시대, 황금시대, 후기시대로서, 화려하고 고음이 아름답다한다면, 과르네리 악기는 남성적·감정적인 강한 울림에 중저음에서의 소박한 울림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악기의 외관은 스트라디바리가 칠이 단정하고 겉모양이 정교하다면, 과르네리는 31살이 지나서 악기 제작을 배우기 시작하여서인지 세공이 섬세하지 못한 편이고, 또 성격이 괴팍하고 술을 좋아하기까지 해서 어떤 제품은 그것이 정말 과르네리의 명기인가 의심갈 정도로 조잡한 것도 남겼다.

과르네리는 이처럼 살아생전에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지 70여년이 지나고서 파가니니가 애용했던 과르네리 Ex-Paganini로 세계적인 명성으로 부활하였다. 과르네리의 명기는 세계적으로 100개 정도로 추산되어 희귀하다.

근대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1875-1962)는 ‘바이올린계의 귀족’이라는 애칭을 갖기도 했었는데 그는 바이올린의 명기 수집에도 열성을 가지고서 무려 20대 이상을 소지하고 있었다.





국민이 사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핀커스 주커만

이스라엘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핀커스 주커만은 자국의 국민이 모금운동을 하여 사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의 연주를 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1967년 유명한 리벤트리트 콩쿨에서 정경화와 공동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한 주커만은 이스라엘의 명예를 올리는 것에 국민들이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한푼 두푼 모아 명기를 사주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더욱더 사명감으로 자신의 연주와 음악활동에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이같이 한 음악가에게 악기를 사주기 위해 그 나라 국민이 거국적으로 모금을 벌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한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회를 많이 열어 번 돈으로 이스라엘 독립 기금을 마련했지만 주커만은 반대로 국가의 도움으로 음악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을 종신대여 받은 안네 소피 무터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이제는 어느새 원숙한 경지로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무터는 1976년 때 루체른 음악제에서 카라얀의 눈에 띄어 첫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베를린 필과의 협연, 잘츠부르크 음악제 출연 등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당시 서독 정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귀했던 탓에 국가 차원에서 무터에게 최고의 바이올린을 구해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서독 정부는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쓰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어쩌다 경매에 붙여졌을 때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이 명기를 구입하여 무터에게 종신 사용토록 대여하게 되었다.

그녀가 일생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이 명기가 다름아닌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가 쓰던 악기인 만큼 그보다 더 뛰어난 연주로서 악기의 권위를 더욱 빛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유지로부터 명기를 선사받은 예후디 메뉴힌

메뉴힌은 돈많은 유대인을 아버지로 하여 1916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4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재능이 보이지 않았으나 날이 갈수록 천재성을 나타내어 불과 6개원 뒤에 발표회를 가져 신동이라고 불렸으며 4년 뒤에는 정식으로 연주회를 열어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천재란 배우지 않은 것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는데 메뉴힌도 그 한 사람이다.

15세에 벌써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누구보다도 잘 연주한다는 절찬을 받았던 메뉴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연주 때 한 유지의 눈에 들었다. 그 유지는 이 천재를 위해 명기를 선사하게 된다.



아카르도가 쓰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샀던 정경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문화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한 역할을 한 정경화. 그녀는 더 좋은 명기를 가지려고 하는 욕구가 컸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부군인 영국 실업가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더 좋은 악기를 구해 주려고 애써 왔지만 정경화도 레코드 인세며 연주 수입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어서 마침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아카르도가 쓰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들이게 된다.

정경화는 처음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갖고 있었으나 마침 현대의 유명한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의 아버지인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이 쓰던 과르네리를 사들여 쓰다가 이번엔 그보다 더 값진 스트라디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경화는 지금까지 과르네리로 많은 활동과 레코딩을 했지만 이젠 그 보다 더 좋은 스트라디로 연주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명기를 헌정받은 로스트로포비치는 지휘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고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가지고 있는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뒤포르)이다.

이 악기는 그가 1970년 서방세계로 망명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어떤 유지가 사준 것이라고 한다.

이 명기에 뒤포르란 이름이 하나 더 붙은 것은 바이올린도 그렇듯이 이것을 갖고 있던 저명한 연주가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제노바 박물관에서 썩고 있는 파가니니

바이올린의 대명사로서 피아노의 리스트에 비기는 파가니니는 자기가 개발한 연주법을 남에게 빼앗길까봐 몹시도 떨었으며 작곡법도 비밀리에 감추어두었던 ‘음악의 구두쇠’였다. 그는 순전히 바이올린 연주로 막대한 돈을 벌었으나 병마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바이올린을 꼭 안고 있는 그의 임종을 지키던 카톨릭 사제가 그의 바이올린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서 “바이올린 속에서 그렇듯 기막힌 소리가 나오니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지요?”라고 묻기가 무섭게 파가니니는 “악마지요!!”라고 대답했다고. 그리고 말라 빠진 손으로 바이올린을 들어 일부러 거칠게 켰더니 사제는 악마의 소리 같다고 두려워 방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이처럼 파가니니는 아무에게도 자기 연주의 진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가 꼭 안고 있던 과르네리는 기침이 심한 가운데 숨이 끊어지면서 그제야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최고의 명기인 과르네리는 자기가 애지중지했으며 온 넋을 불어넣은 것이니까 다른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지게 되면 자기의 연주 비밀들이 알려질까봐 남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말라는 뜻을 보였기 때문에 지금도 유리상자에 넣어져 제노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자클린느 뒤 프레의 스트라디바리우스

20세기 최고의 여류 첼리스트로서 10대에 이미 연주 활동을 하여 이름을 날리던 뒤프레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난치병으로 28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부군 바렌보임의 열렬한 사랑도 운명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녹음된 음반으로 그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지만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영국 사람은 물론 온 세계 사람들 앞에서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 주었다.

그녀가 한창 이름을 날릴때 한 영국의 유지가 그녀에게 영국의 이름을 빛낸다는 감사의 뜻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악기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피아티고르스키가 가지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

1957년 한국을 찾아 이화대학 대강당에서 연주회를 열어 한국을 감동시킨 피아티고르스키의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바디아)이다. 그는 돈 많은 음악가였지만 어떤 유지의 호의로 이 명기를 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하이페츠·루빈스타인과 함께 ‘백만달러의 트리오’라는 3중주단으로서 활약할 때에도 물론 이 명기를 썼다. 그는 이 명기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서정이 감도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피아티고르스키는 몸이 아주 커서 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들고 무대에 나타날 때 이 악기가 바이올린처럼 작게 보여서 더욱 인상적이었다고.



사라사테가 소유한 두 개의 스트라디

19세기 최고의 비르투오조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는 두 개의 스트라디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는 1724년에 만들어진 황금빛나는 악기로 소년 시절 사라사테의 감동적인 연주를 들은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가 하사한 것이다. 그는 6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로 이 악기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만년에 그가 보아세의 콜렉션 중에서 입수한 것으로서 1713년에 만들어진 매우 아름다운 악기다.

사라사테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연주 여행하면서 이사벨라가 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열광케 했는데 여왕은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기가 사라사테에게 명기를 준 것에 대하여 큰 긍지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사라사테의 연주는 정열적이라기보다는 음색이 찬란하고도 부드러운 것이 특색인데, 이같은 특징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사벨라 여왕의 덕이라고 항상 감사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이 명기로 ‘찌고이네르바이젠’을 녹음하였는데 초기 녹음기술 탓에 잡음이 많지만 그의 기교를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사라사테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황금빛 스트라디는 모교인 자신의 파리 음악원에, 그리고 1713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는 마드리드 음악원에 각각 기증했다.



쿠세비츠키가 쓰던 아마티를 그 미망인으로부터 헌정받은 개리 카

현대 최고 베이시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개리 카는 최고 명기인 아마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이 최고의 명기를 갖게 된 것은 매우 묘한 인연에서 시작된다.

20세기 최고의 베이시스트이며 지휘자인 러시아의 쿠세비츠키에게 소년 시절 더블베이스를 배웠는데 그의 뛰어난 재능이 인정되어 수제자가 되었다.

그의 스승 쿠세비츠키는 1951년 세상을 떠날 때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뛰어난 연주자가 된 개리 카에게 자기가 쓰고 있던 아마티 더블 베이스를 주고도 싶었지만 크레모나에서 1614년에 만들어진 가장 뛰어난 악기를 선뜻 넘겨주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쿠세비츠키의 미망인이 나중에 개리 카를 불러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아마티를 선물하게 된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때 사랑하는 제자 카에게 손수 아마티를 물려주시지는 않았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헌정하기로 했는데 당신(쿠세비츠키)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recommend     -list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no  name subject date hit
230
 
 나의 조선모루 2012-02-14 10038
229
 
 # 051127  1 2005-11-27 8198
 
 퍼온 글)) 현악기 명기와 연주자들 2009-05-22 7614
227
 
 050918 # 2005-09-18 7597
226
 
 #051228 BERGAMO 찾아가기. 2005-12-30 6858
225
 
 #070117 2007-01-17 6672
224
 
 새 작업실 #061212 2006-12-15 6616
223
 metalman
 조남우 선배님의 브로치를 만나다 2004-08-04 6498
222
 
 새 작업실 #061217 2006-12-17 6489
221
 
 전시회 - 바다 네 품에 안기다 2005-07-22 6447
220
 
 #060712 미쳤던 날. 2006-07-13 6429
219
 
 새 작업실 #061228  6 2006-12-28 6424
218
 
 대장간 이야기 # 01 2006-10-03 6390
217
 
 작업실에 라디오 2007-03-30 6369
216
 
 12월 5일 저녁  1 2006-12-05 6365
215
 luvmetal
 부럽죠?  1 2005-11-08 6346
214
 
 박정은 금속공예展 - 일상을 말하다 2010-04-03 6311
213
 
 대장간 이야기 # 03 2006-11-28 6252
212
 
 퍼온기사)) 예술인 부업으로 생활고 해결... 자구책 활발, 제도적 지원 시급 2007-04-10 6244
211
 
 속쓰림 2006-07-18 6236
-list  -next page  
1   2   3   4   5   6   7   8   9   10   11   12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