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퍼온글)) 미술과 의자 - 그림 속에서 만나는 의자
이름: * http://www.metalman.co.kr


등록일: 2008-09-2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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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_ 반 고흐, [담배 파이프가 놓여 있는 빈센트의 의자], 1888


2 _ 반 고흐, [고갱의 의자], 1888


3 _ 안규철,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1991


4 _ 프랑스 화가 에베르의 [잠든 꼬마 바이올린 연주자]
휴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자의 특징을 잘 표현한 작품



5 _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 17세기


6 _ 앵그르의 [제우스와 테티스],1811
그리스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제우스상을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으로
[권좌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7 _ 앵그르, [권좌의 황제 나폴레옹 1세], 1806



디자인과 일상 Design is Life

미술과 의자
그림 속에서 만나는 의자

    
두 의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둘이 살짝 비튼 각도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 의자들은 대화를 하고 있다. 바로 반 고흐가 원한 현실이다.
두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도 그렇게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존재의 상징, 의자

인물화, 특히 초상화의 모델을 영어로 싯터(sitter)라고 한다. ‘앉아 있는 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즐겨 쓰는 모델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싯터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모델은 대체로 앉아 있고,
자연히 의자가 보조적인 소품으로 그림에 빈번히 등장한다.
회화에서 의자는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기호인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존재 증명을 위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술에서 의자는 조연,
혹은 엑스트라의 역할로부터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간혹 예외가 있다. 인간의 부재를 나타내기 위해 의자가 등장할 때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빈 의자만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경우이다.
이런 작품은 빈 의자를 통해 인간의 부재를 강조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가 바로 반 고흐의 [담배 파이프가 놓여 있는 빈센트의 의자](1888)
(그림1)이다.

반 고흐의 [의자](그림 1)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클로즈업된, 수수하고 투박한 한 개의 의자이다.
방 한 귀퉁이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의자 위에는 반 고흐의 담배 파이프가 조심스레 누워 있다.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지금 반 고흐의 의자 위에는 반 고흐가 앉아 있지 않다.
그는 부재중이다. 반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반 고흐 없음’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부재중이 아니다.
다른 의자에 앉아 이 의자를 그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빈 의자를 바라보는 이는
타인이 아니라 반 고흐 자신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현실에서 반 고흐의 부재를 절감하는 이가 타자가 아닌 반 고흐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헤어진 연인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일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 정체성까지 상실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자신의 부재를 절절히 느낀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심각한 자아의 위기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내가 부재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은 곧 주위의 타자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음을
의미한다. 남들이 나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커다란 상실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그것이 효과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는 결국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반 고흐의 의자는 그 같은 자기 부정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그래서 의자 위에 놓여 있는 파이프와 연초가 마치 투신자살한 사람이 벗어놓은 신발이나
옷가지 같이 느껴진다. 자기 부정은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 고흐가 그린 또 다른 의자 그림 [고갱의 의자](1888)(그림 2) 역시 빈 의자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의자의 주인은 자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한다. 그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그의 친구 반 고흐이다. 고갱은 지금 어디 갔을까?
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린 곳, 아를(arles)에서 고갱과 한집살림을 하며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는 점점 멀어져갔고 급기야 유명한 반 고흐의 ‘귀 자르기 자해 사건’이 있은 뒤 고갱은 영영 반 고흐 곁을 떠나갔다.
고갱의 그 부재를 반 고흐는 아픈 마음으로 주시하며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고갱의 의자는 반 고흐의 의자보다 좀더 우아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
그 의자 위에는 노란 표지의 소설책 두 권과 촛불이 놓여 있다. 배경의 가스등이 암시하듯 시간은
밤이다. 이는 반 고흐의 의자가 낮에 그려진 것과 대비된다. 반 고흐의 의자는 수사관처럼
구석구석 뒤지는 날빛에 발가벗기운 채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고갱의 의자는 가라앉는 밤의 정조에 기대 이맘때의 시간이 주는 아늑함을 즐기고 있다.
그 아늑함 사이로 퍼져나가는 촛불의 빛은 고갱의 오롯한 예술혼을 상징하는 것이자,
그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반 고흐의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만큼 애절하고 감상적인 정서가, 그래서 또 앞의 반 고흐의 의자 그림과 대비되는 그림이다.
두 의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둘이 살짝 비튼 각도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 의자들은 대화를 하고 있다.
바로 반 고흐가 원한 현실이다. 두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도 그렇게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 고흐와, 고갱으로 상징되는 타자가 함께 말이다.
그러나 반 고흐에게 있어 나와 타자를 대변하는 두 의자는 영원히 빈 의자였다. 그것이 바로 반 고흐가 자기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이유였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보듯 주체가 스스로를 부재로 보는 것은 부조리이다.
존재하는 자가 어떻게 동시에 부재할 수 있는가?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 같은 부조리를 갈수록 조장한다.
가족의 해체와 인간 소외, 왕따, 황금만능주의, 집단이기주의, 신자유주의 등 여러 사회현상들은 개인들로 하여금 존재가 왜곡되고 부정되는 공황적 경험을 빈번히 하게 한다.
반 고흐의 고독은 기실 그만의 고독이 아니며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소외를 대변하는 선조적 경험이다.
이런 경험의 누적은 사회를 그만큼 메마르고 비인간적인 공간으로 억압해 들어가게 되는데,
조각가 안규철은 바로 그 억압과 부조리를 진정한 휴머니즘으로 딛고 일어서자고 외친다.

그리고 빈 의자, 존재의 부정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1991)(그림 3)이라는 설치 시리즈 중에는
화분에 의자를 심은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 있다.
토기 화분과 흙, 그리고 그 위에 난 풀, 다리 한 쪽이 긴 의자가 작품의 전부이다.
한 쪽 다리가 긴 의자는 마치 화분에서 자라난 듯 공중으로 꽤 솟아올라 있다.
의자가 이렇게 된 데 대해 작가는
“화분에 의자를 심고 물을 주니 의자가 그렇게 자라났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명확하다. 바로 그런 자세로 삶을 살자는 것이다.

안규철의 의자도 반 고흐의 의자와 마찬가지로 빈 의자이다. 부재를 상징한다.
안규철은 그 부재를 주어진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부재를 화분에 심고 정성껏 물을 주는 상황을 상정했다.
그 제스처는 바로 부재를 거부하는 단호한 몸짓이다. 현실의 부조리와 억압에 매몰돼 자포자기하고 스스로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확신과 삶에 대한 믿음으로 존재를,
스스로를 긍정하자는 호소인 것이다.
비록 그런 노력이 당장 보잘 것 없고 소소해 보인다 할지라도 존재의 힘은 그 같은 긍정적
실천을 통해 확고히 확보되는 것이다.

이처럼 빈 의자를 통해 미술이 부재와 부조리를 탐구한 것은 근, 현대 들어서의 일이다.
고전 미술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자는 언제나 채워져 있었고, 또 언제나 존재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전일적인 종교와 지배체제가 완벽하고 짜임새 있게 기능해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의 실존과 관련한 심각한 고민을 할 틈이 없었고,
또 그만큼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고전 미술에서 의자는 대부분 적극적인 존재의 긍정,
나아가 그 싯터가 지니고 있는 권위의 극대화를 위해 기능하는 기호로 표현됐다.
그 대표적인 그림의 하나가 17세기 바로크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 (그림 5)이다.

그림은 꽤 단순한 편이다. 붉은 휘장이 드리운 배경을 뒤로 하고 교황이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붉은 색 바탕에 황금테를 두른 의자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무척 권위적으로 보인다. 미간을 다소 찡그린 교황의 표정은 그 의자 못지 않게 권위적이다.
지금 의자는 이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지닌 속내를 외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높고 각진 의자는 조금도 타협할줄 모르는 그의 고집을 그대로 드러낸다.
등받이의 황금테는 그의 상반신을 담는 액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의자 자체가 이렇듯 테두리가 되어줌으로써 그의 권위를 더욱 이상화 한다.
일종의 후광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의자 등받이의 이런 효과는 앵그르가 그린 [권좌의 황제 나폴레옹 1세](1806)(그림 7)에서도
잘 나타난다. 무지개처럼 둥그렇게 쳐진 황금테는 나폴레옹에게 거의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팔걸이 앞부분의 독수리 형상 또한 지존으로서 그의 권위를 드러낸다. 의자 곳곳이 착석자의 영광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벽화는 파라오나 귀족을 표현할 때 얼굴은 옆면, 가슴은 정면인,
고대 이집트 특유의 독특한 형식주의로 표현하고, 평민이나 노예를 표현할 때는
곧잘 사실적인 자연주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이는 권력자는 ‘존재하는 자’이고
서민은 ‘행위하는 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자는 영원을 약속받은 자이고 행위하는 자는 곧 사라질 자이다.
고전 미술에서 의자는 앞서도 보았듯 바로 존재하는 자를 기리고, 그 권위와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뒤엎은 것이 근대의 혁명과 시민사회라고 한다면, 그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자꾸 빈 의자가 늘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시민에게 권위가 주어지기는 커녕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일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 같은 변화를 의자 표현의 변화를 통해서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역시 그림은 시대의 거울이다.



글 _ 이주헌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
이주헌은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가나아트 편집장을 거쳐, 현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 겸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수줍게 돌아선 누드-20세기 한국의 인물화]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 [내 마음 속의 그림] [미술로 보는 20세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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