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의 문 앞에 배달된 전시회의 카다록을 펼친다.
갈피마다 인쇄된 사진들.
공들여 찍고, 인쇄된 작품사진이라는 것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아리송하기만하다.
ㅡ..ㅡ; 브로치란다.
쓸모~! 공예~! 작가~!
상상되질 않는다.
누가 이걸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싶을까.
저것들을 가슴에 달고 내 앞에 나타날 어떤 여인이 있다면?
이런 미련 곰탱이같은 여자. 상상되질 않는다.
내 관대함의 부족일까?
내 너그럽지 못함을 반성해야할까?
누가 지불하고, 저거 가슴에 달고 싶을까.
어쩌면 만든이는 처음부터
쓸모에 대한 의도나 관심은 추호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저것들을 가슴에 단 사람은 자신 앞에 선 사람들에게
매번 자신의 브로치에 대해서 아주 길고 장황스런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현대공예의 흐름이 어떻고, 만든사람의 작가경력이 어떻고,
작가의 디자인 컨셉이 어떻고, 어쩌고 저쩌고 기타등등,
그러고나면 뭔가 그럴듯한 브로치로 보여질까? 아닐껄?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일뿐이다.
궁금해진다.
제대로 된 공예라는 것을 생각이라도 해보기나 했던가?
머리속에 그린 공예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런 쓸모없는 물건을 만드어대는 공예가는
쓸모없는 작가들일지도 모른다.
저 만든이들은 어떤 만족으로 이렇게 만든 것들을 전시회장에 내놓고,
인쇄를 해대는 것일까.
작가들은 예술가들은 언제까지
미개인들의 미개를 탓하며, 정신적인 우월감을 가진 무능한 선교사로 남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 선교사들을 닮고 싶어하는,
닮아지고 있는 젊고 어린 공예가들.
그리고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졸업할 무렵엔 공예가로서의 길을 잃을 것이고,
혹은 길조차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관객이나 수요자에게
말도 안돼는, 쓸모없는 컨셉들을 들이밀고, 설득하려 말기를,
그전에 관객이든 수요자든 알아들어먹을 언어를 공부하면 안될까?
선교사가 미개인들의 언어를 배우면 안될까?
고장난 컨셉들에 직관이라고는 눈닦고 봐도 보이지 않는 이것들은 도대체 뭐요?
그전에 손톱만큼이라도 쓸모있는 것을 만들어 낼 의지는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수업에서 절대적인 것처럼 외치던
실용성과 쓸모, 공예의 가치 운운하던 내용은 어디간거지?
차라리 공예가라 말던가. 차라리 브로치라 말던가.
어리둥절 꿈꾸고, 제 편한대로 해몽해놓고,
작가경력으로 사기치지 말기를
작품이라는 것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니까.
차라리 작품에 작가경력이라도 구구절절 부식이라도 채워두면 어떨까?
그러면 납득할만 한 작품가치라도 가질 수 있을라나?
컨셉이라는 것들을 구성하는 어려운 단어들이 싫다.
어렵고 복잡한 언어로 변명하기도 싫다.
그냥 짧은 외마디 비명으로도 전달될 수 있을 것을.
그냥 소리없이 입술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전달하기에 충분할 것을.
작품이라는 것을, 물건이라는 것을
말도 안되는 개념으로 둘러치고, 덮지 말기를,
제발 쓸모있기를,
제발 남들에게 쓸모있는 물건을 만들기를,
쓸모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작은 것이라도 소통될 수 있는 것이 담겨진 작품을 만나고 싶다.
기꺼이 지불하고, 소유하고 싶은 충동을 갖고 싶다.
갖고싶은 공예가의 물건을 만나본지 너무 오래되었다.
공예가들이 만든 쓸모있는 물건을 만나고 싶다.
===================================================================
의미없는 말장난,
말도 안되는 컨셉으로 둘러진 요상한 물건들이 보인다.
컨셉과 작품 사이에 아무런 등식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직관의 느낌도 발견되질 않는다.
재미없다. 게다가 쓸모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갖고싶은 맘이 전혀 안든다.
그것들을 돈주고 산다는 건 꿈도 꾸기 싫다.
이것이 지금 공예의 무덤이다.
| |
